제이크 질렌할의 성숙한 연기를 제대로 느꼈던 작품!
제이크 질렌할의 어릴 적 작품들을 먼저 봤어서 그런지 아저씨가 된 그의 작품을 제대로 본 것은 소스코드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워낙 배우들의 원래 이름을 외우는 것을 못하는 편인데 질렌할이라는 이름이 독특하고 멋있어서 그런지 한 번 보고는 계속 기억하고 있는데요. 한 번 눈에 들어온 이후에는 그가 출연하는 작품이 눈에 띄면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소스코드는 아마 SKT에서 제공하던 무료 영화 서비스를 통해 처음으로 보게 된 영화였어요. 소스코드라는 이름을 봐서는 무슨 해킹을 하는 영화인가 싶었는데 내용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엄청난 반전이 있어서 어쩌면 미리 알고 봐도 딱히 감상에 방해를 받지는 않을 것입니다. 작품의 내용상 팔과 다리를 잃고 혼수상태에서 목숨만 붙어있는 주인공의 정신세계에 접속해서 실제로 벌어질 사건을 수없이 반복 시뮬레이션해서 사고를 예방하고 더 나아가 범인까지 잡는 것인데요. 자신이 거의 시체나 다름없는 몸뚱이의 정신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반응하는 과정에서의 감정 표현이 많이 절제되어서 그런지 상당히 자연스럽게 훅 다가왔습니다.
피실험 체도 놀라고 박사도 놀랐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주인공은 팔다리 없는 혼수상태의 머리와 몸과 남아있는 상태인데요. 사고를 당한 군인이지만 소스코드 실험 조건에 가까워서 캡슐에 갇혀서 계속 죽고 살아나는 과정을 겪게 됩니다. 사망한 사람의 마지막 기억 8분을 들여다보고 실제로 그 사람이 되어서 다양한 단서를 찾을 수 있고 그 결과들을 바탕으로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인데요. 어쨌든 그가 소스코드 안에서 사망하다가 어떤 캡슐 속 의자에 앉아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부터 흥미진진해집니다. 콜터 대위(제이크 질렌할)는 모니터를 통해 보이는 굿 윈 대위(베라 파미가)를 보며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혼란스러워하는데요. 여러 차례의 시뮬레이션 후에 소스코드를 개발한 박사와 독대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서로 모니터를 통해 얼굴을 보고 대화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콜터의 태도에 뭔가 이상함을 느낀 박사는 자신이 보이냐며 물어보는데요. 콜터는 당연히 보인다고 하고 박사는 깜짝 놀라며 흥미로워합니다. 왜냐하면 콜터와의 소통은 그저 텍스트와 목소리로 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엄청난 반전 중 하나인데 전혀 짐작도 못 했기에 당연히 저도 감탄사가 바로 나왔었어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인지하는 우리의 뇌
우리는 자꾸 깜빡깜빡하고 금방 잊어버리는 것을 머리가 나쁘다며 안 좋게 생각하곤 하는데요. 사실 망각은 인간에게 축복일 수 있다는 말에 저는 꽤 동의하는 편입니다. 우리가 감각기관으로 받아들이는 정보가 정말 어마어마할 것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그대로 명확하게 기억하다간 정신이 없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계속 잊어버리면서 정말 중요한 정보만 장기 기억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정말 신기합니다. 그런데 이런 점을 봤을 때 우리의 감각기관이 인지하는 엄청난 정보들의 범위가 무궁무진할 것이라는 가정하에 이 영화가 기획이 된 것 같아요. 기차에서 벌어진 일이니 자신의 좌석 주변에서 일어난 것만 기억할 것 같지만 훨씬 더 멀리 안 보이는 곳에서 일어난 것도 우리가 의식하지 않았을 뿐 인지가 가능하기에 기억에서 다양한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평소 저는 매일 비슷한 코스로 걷고 뛰곤 하는데요. 의식을 하지 않을 때는 그냥 평소 다니는 길이구나 싶다가도 조금만 의식을 신경 쓰면 수많은 정보들이 눈과 귀로 들어온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길을 가는 입장에서야 전방 10미터 정도만 신경 써도 되겠지만 주변에서 들리는 온갖 소음과 대화들, 저 멀리 보이는 건물들과 차들의 움직임 등등 정보의 홍수입니다. 상당히 재미있어요. 물론 예민한 분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자극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루시드 드림을 경험했기에 더욱 재미있었던 영화
소위 자각몽이라고 하는 루시드 드림의 존재를 몰랐을 때 한창 불면증에 시달리곤 했었는데요. 몸이 공중에 뜨면서 천장에 부딪히고 다시 바닥에 떨어지거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몸이 어디론가 날아가려고 할 때 문 틀을 잡고 버티거나 진공 속에서 숨이 쉬어지지 않는 등 온갖 고통들을 잠을 잘 때마다 겪어서 잠자는게 공포스러웠고 병적으로 잠을 자지 않으려고 견뎠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너무 힘들어서 검색을 해보니 루시드 드림의 증상 중 하나이니 그 현상에 몸을 맡겨보다는 글과 방송을 보고 제대로 가지고 놀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신기할 것은 천장으로 뜨는 몸을 저항하지 않고 놔두니 천장을 뚫고 윗 층으로 계속 올라가는 것이었어요. 아파트에 살던 때였는데 당연히 윗 집을 제가 가 본 적도 없지만 그 집을 구석구석 구경하고 사람들이 자는 모습까지 확인했거든요. 지금도 그저 상상에 불과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어쨌든 소스코드에서 사망자의 기억을 탐색하듯 뭔가 두리뭉실하지 않고 구체적이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아파트라서 구조가 비슷하기도 했겠지만 종종 들리던 층간소음, 아주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던 순간 등등이 종합되어서 자세하게 보인 것 같아요. 이 영화를 단순하게 보면 시간을 리셋하는 SF 영화 정도의 느낌이 들 수 있지만 어쩌면 두뇌의 인지 기능을 극대화하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내용을 엿볼 수 있어서 관련된 호기심이 있던 분들은 정말 재미있게 볼 수 있을 듯합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기가 막히고, 여주인공인 미셀 모나한의 미모와 매력은 말할 것도 없지만 굿윈 대위를 맡은 베라 파미가의 귀여움도 보는 즐거움이 상당합니다. 저는 강력 추천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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